2017년 10월 9일 월요일

리더, 기업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가? 97세 철학자의 인생론

[DBR]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영혼이란 무엇인가?”
대학교 철학강의의 문답이 아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2012년 차동엽 신부가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을 통해 이 회장이 별세 직전 철학과 인생에 대해 수행한 치열한 고민을 소개하면서 세상에 그 사실이 알려졌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이룰 것은 다 이룬 것처럼 보였던 그는 왜 죽음을 앞두고 삶과 철학,그리고 신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까? 그를 닮기 위해 부나방처럼 일터로 뛰어드는 비즈니스맨들은 사유할 시간조차 없는데 말이다.

97세의 나이에도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이 회장이 죽음 직전에 이런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를 분석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인생을 완성해 가야 하는가. 또 경영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리더들은, 그리고 CEO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며 어떤 족적을 남겨야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1920년 태어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조치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1944년 송산여중에서 교편을 처음 잡았다. 이후 중앙중학교 교사, 중앙고등학교 교감으로 일하며 시대의 스승이었던 인촌 김성수 선생과 함께 교육에 헌신했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연구교환 교수, 연세대 철학과 교수 등으로 재직했고, 1985년 국민훈장 목단장(현 모란장)을 받았다.

기업에게, 혹은 기업가에게 윤리란 무엇일까요? 존경받는 기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기업에게, 기업가에게 윤리를 말한다는 게 좀 어색할 수가 있어요. 일단 기업은 이윤을 내야 하는 곳이잖아요. 경쟁도 치열하죠. 그런 상황에서 윤리성이라는 것을 마구 들이대면 기업들이 곤란할 수 있어요.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기업,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가 좀 생각해봐야 할 게 있어요. 이윤을 왜 내요?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죠. 왜 존재해야 하죠? 고용도 하고 사회의 발전도 이끌면서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기업의 윤리성, 사회적 책임성이라는 게 어느 시점부터 기업이 우리는 이제 사회에 기여한다고 결심하고 시작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뒷받침돼야 해요.

이윤을 왜 내요?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죠. 왜 존재해야 하죠? 고용도 하고 사회의 발전도 이끌면서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우리가 본격적인 산업화를 하기 전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게으른수준이었어요. 이런 사회에 신뢰가 구축될 수 없어요. 그런데 당시 고도성장을 하던 일본은 근면한 상태 단계로, 즉 국민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상태였던 거죠. 그렇게 하나씩 자리잡아가면서 사회적 신뢰라는 게 만들어집니다.

기업도, 국민도, 사회도 성숙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서 만족하면 안 되고 한 단계 더 성장해야 돼요. 일본이 열심히 추격하려던 서구사회, 미국 등은 어땠을까요? ‘일의 가치를 아는 사회였어요.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기업은 이윤의 노예가 되지 않는 거예요. 개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중시하고 사랑하고, 기업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의 사회적 가치를 크게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기업인 중에도 이 정도로 성숙한 의식을 가진 분들이 몇몇 계셨습니다. 모두가 잘 아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선생이 그런 분이셨고요, 한국유리를 창업하셨던 최태섭 회장도 그런 분이셨어요. 그분은 기업 자체가 사회에 속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계셨고 기업 자체를 특정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분 생전에 만나서 대화할 때마다 제가 많이 배웠어요. 서구 선진국의 위대한 기업들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모습들을 당연시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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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대로 기업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기업가는 그 누구보다 회사 직원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기업은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까요?

한 일본 기업인은 회사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첫째,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일터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도록 해주는 것이다. 둘째, 우리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의 목적을 이해하고 고맙게 생각해주고, 우리 회사의 물건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줍니다. 그 임원이 도쿄의 공장장으로 재직할 때 세운 구체적인 목표를 들려줘요. ‘수천 명의 공장 직원들이 언젠가 회사를 떠난 뒤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때회사에서 일할 때가 행복하고 좋았는데, 그런 때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 직장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한국의 기업인이 그 목표에 도달한 것 같은가라고 다시 물었어요. 그러니까 그 임원은 하루아침에 도달할 수 없는 목표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면서 본인의 도쿄 공장장 시절 도입한 자율 카페테리아얘기를 했습니다. 직장인들에게, 그것도 공장의 근로자들에게 점심식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누군가는 공장 구내식당에서 대충 때우고, 누군가는 도시락을 싸오는데, 도시락 싸오는 것도 사실 신경 쓰이는 일이죠. 그래서 아예 고급 카페테리아 형식으로 구내식당을 싹 바꿔서 누구든 와서 맘껏 먹고 먹은 만큼 장부에 기재하라고 했답니다. 

배고프거나 좋아하는 게 있으면 많이 먹을 수도 있고, 배부르면 간단하게 먹을 수도 있죠. 그럼 먹은 양이나 음식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데, 이걸 그냥 직원들 양심에 맡겨 버린 거예요. 그런데 몇 달 운영해도 적자가 나지 않더랍니다다들 점심식사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대로 즐겨먹게 됐고요. 

그게 왜 그럴까 저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결국 먼저 신뢰를 줬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신뢰를 주기 시작한 기업가로 인해 회사 전반에 신뢰가 퍼져나가는 것이죠. 기업가가 기업 내 직원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의 표본 같은 것입니다. 1960년대 일본 대학생들에게 가장 신뢰하는 집단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기업가들이라고 답하는 비율이 60%를 넘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기업가의 영향력이란 결국 리더의 영향력일 텐데요, 리더의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리더 한 분을 소개하면서 그분이 지키셨던 덕목을 말씀드리는게 좋겠어요. 인촌 김성수 선생입니다. 기업가이자, 교육자셨고, 시대의 스승이었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가 인촌 선생을 만나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저도 부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인촌 선생에게는 4가지의 뚜렷한 원칙이 있었어요. 첫째, 그분은 아첨하는 사람을 절대 곁에 두지 않았어요. 둘째, 남을 비방하는 사람을 멀리하셨어요. 셋째, 편 가르기 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셨어요. 넷째, 항상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골라 일을 맡기셨어요.

동아일보도 본인이 직접 운영하지 않으시고 송진우 선생에게 맡겼고, 중앙중·고등학교도 교사를 짓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까지만 하시고 실제 교육과 운영은 인촌 선생이 판단하기에 본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께 맡겼고요, 그렇게 평생 애정과 열정을 쏟아부은 고려대에서도 본인이 총장을 하거나 이러진 않았죠. 더 잘할 사람이 있으면, 더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일을 맡겼죠. 

지금의 국가조직, 기업에서도 이런 원칙을 갖고 리더가 그 조직을 이끌어간다면 일이 안될 리가 없는데 사람 마음이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오히려 배척하는 경향이 있죠. 나보다 못한 사람들만 아래에 두고 일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면요, 그냥 자기가 혼자 일하게 돼요.

‘훌륭한 리더에 대한 얘기를 아무리 들어도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왜 그런 것일까요?

인간이 참으로 떨쳐내기 어려운 것, 바로 욕심 때문이죠. 아무리 성공을 했어도,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이건 극복하기가 참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돈 욕심은 생각보다 금방 떨칠 수 있어요. 문제는 명예욕이죠.

모 대학에서 모금 운동을 크게 벌인 적이 있어요. 아마 50주년 기념으로 동문들에게 발전기금을 모으는 거였나 봐요. 그때 설립자가 직접 미국도 다녀오고 사방팔방 다녔는데, 생각만큼 안 모였던 모양이에요. ‘내가 나섰는데 안 됐다라는 스트레스가 엄청 났었나 봐요. 그래서 그 이후 시름시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제가 안타까웠던 게 , 정말 똑똑한 분이지만, 그래도 저걸 놨어야 한다. 후배들이, 젊은이들이 저걸 하게 뒀어야 하는데 그걸 놓지 못했구나라는 부분이었어요.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존경받는 게 아니에요. 사랑을 주고 남들에게 봉사하고 자기가 박수를 받는 게 아니라 남에게 박수를 치며 살아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요.”

아까 말씀하신 뭔가 다른 동력, 명예욕과 다른 그것은 무엇인가요?

명예와 칭찬. 이건 곧 명예욕이잖아요. 제가 제안하는 개념은 존경과 봉사예요. 존경은 그저 어떤 성과를 내서 받는 게 아니에요. 어떤 특정한 일을 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지만 존경은 받지 못합니다.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존경받는 게 아니에요. 사랑을 주고 남들에게 봉사하고 자기가 박수를 받는 게 아니라 남에게 박수를 치며 살아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요. 선후관계가 달라요.

명예욕은 칭찬을 받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일을 하는 개념이지만 존경은 내가 좋아서, 내가 봉사하고 싶어서, 사랑을 나누고 뭔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 겸손하게 내 이름 내세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죠. 그렇게 살다보면 사람들이 존경을 해요. 동력은 존경받고 싶은 욕구 사랑을 베풀고 봉사하고 싶은 욕구인 거지요. 사랑을 베푸는 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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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박하고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사랑을 베풀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죠. 옛날에 안병욱 교수랑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런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우리가 하는 강의라는 게 참 맹물같지 않느냐. 근데 이 아무 맛이 안 나는 듯한,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 요새 젊은 학자들이 하는 강의는 뭔가 콜라 같고 사이다 같다. 마실 땐 달달하고 좋은데 몸에 좋을 건 없는. 뭔가 첨단 기술과 혁신, 경쟁에서의 승리 등으로 강의가 쏠리니까요. 근데 윤리학에서는 이기적인 경쟁은 파멸의 길로 봅니다.

경쟁에도 종류가 있어요. 이제 우리 사회가 어떤 경쟁을 하는 사회가 되고, 우리 개인들이 각자 어떤 경쟁을 하고 살 것이냐를 고민해야 돼요. 경쟁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방금 말한 파멸로 가는 이기적 경쟁이에요. 이건 무조건 지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포츠 세계에 보통 존재하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게 있어요. 여기에서의 핵심 개념은 질 줄 아는 것이에요. 공정한 룰에서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죠. 이 원칙만 잘 퍼져도 세상은 좋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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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완성은 무엇일까요? 좋은 삶을 살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4·19 민주화 운동을 연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겪었어요. 가끔 시간 여유가 생기면 4·19 묘역에 가봅니다. 거기에 가면 욕심이 없어져요. 세상을 위해서, 그런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 베풀고 헌신하기 위해서 나선 사람들이었잖아요. 그 사람들이 어떤 명예욕으로 움직인 게 아니죠. 원대한 목표, 세상을 위한 목표가 있었고 그걸 위해 움직였잖아요. 그러니 지금 존경을 받죠.

우선 저는 성공한 기업가나 정치인은 참으로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성공을 해서가 아니에요.그들은 사회를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할 기회를 그 어떤 사람들보다 많이 갖고 있어요. 그게 엄청난 축복이라는 거죠. 

다들 잘 아시는 손기정 선생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제가 좀 친한 세무사가 있었어요. 종로에 사무실이 있어서 제가 가끔 찾아가서 뭐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느 날 그 세무사를 찾아갔더니 방금 손기정 선생이 왔다 가셨다라고 해요. 근데 이 세무사 양반이 좀 뭔가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냐라고 제가 물었죠. 
그랬더니, 방금 손기정 선생이 와서 내가 어디에서 상을 좀 받아서 상금이 들어왔다. 근데 이게 공짜로 생긴 돈인데, 세금을 내고 써야겠다. 세금 내는 것 좀 도와 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세무사가 웃으면서 선생님 연세도 많으시고 직업도 없으시니 신고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대요.

그 말을 들은 손 선생이 그러면 안 된다. 내가 한 평생 이 나라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고 살았는데 공돈 생겼을 때 세금을 꼭 내야 마음이 편할 것 아니냐. 그러니까 도와 달라고 말씀하더랍니다. 그래서 세무사가 손 선생이 내야 할 세금을 계산해서 이 금액만 내시면 됩니다’라고 알려드렸다고 해요. 그러니까 다시 손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밖에 안 되냐? 더 많이 내는 방법 있지? 좀 많이 내는 그 방법으로 좀 해줘.’ 그렇게까지 세금이 내고 싶으냐고 물으니 내가 이제 나라 위해 도울 게 아무 것도 없지 않나.그러니 많이 해줘라고 하셔서 좀 더 많이 내는 방법을 계산해서 보여드렸다고 해요. 그러자 그때서야 손 선생은 ,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고맙다고 말씀하시고 떠나셨대요.ㅡ그 세무사 사무실을 나서서 긴 복도를 걸어가시는 손 선생 뒷모습이 너무나 가벼워 보이고 행복해보였다고 합니다

그 뒷모습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것에 대한 답이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내내, 김형석 명예교수는 쉰일곱 살이나 어린 기자에게 단 한 번도 말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노 철학자는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지방에서 강연이 있어요. 어서 역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두서없는 노인 얘기 들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그가 일화를 들려줬던 고 손기정 선생의 뒷모습과 겹쳐보였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05호
필자 고승연
비즈니스인사이트
businessinsight@naver.com

고물을 보물 만든 '중고나라 대통령'

[송혜진 기자의 느낌] 국내 최대 온라인 중고 거래 장터.. '중고나라' 이승우 대표

'중고나라' 대표 이승우(40)씨가 2012년 초 결혼하고 처음 산 가구는 12만원짜리 3인용 소파였다. 싼 맛에 샀지만 누워 있으면 허리가 아팠다. 한 달을 참다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장터에 9만원에 내놨더니 10분도 안 돼 연락이 왔다. 동네 파출소 순경이었다. "고 사이즈가 우리 파출소 민원 응접용으로 딱이겄소!" 순경은 바로 화물차를 불러 소파를 실어 갔다.
이승우씨는 "그 소파는 내겐 잘못 사들인 물건이지만 순경 아저씨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소파를 치워서 속 시원했고 순경 아저씨는 찾던 소파를 싼값에 들였다고 흡족해했다. 물건이라는 게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모두에게 좋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중고나라’가 지난 1월부터 운영하는 폐쇄형 쇼핑몰 ‘비밀의 공구’에서는 ‘엠제이(MJ·Multi Jockey)’라는 이들이 활약한다. 최근엔 전직 개그맨이 많아졌다. ‘중고나라’ 이승우(가운데) 대표는 이 날 회사 헬멧을 쓰고 달렸다. 뒤에 선 개그맨 출신 MJ 김범용(왼쪽)씨와 이광득(오른쪽)씨가 이렇게 외친다. “대표님! 이거 언제까지 찍어야 해요? 과메기 팔러 가야 하는데!”/오종찬 기자
2003년 12월 네이버 카페로 처음 문을 연 '중고나라'는 현재 우리나라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이자 중고 거래 장터로 꼽힌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자원의 선순환(善循環)'. 누군가가 쓰다 내놓는 물건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을 담았다. 저성장 시대에 딱 맞는 얘기여서일까. '카페'였던 '중고나라'는 어느덧 '나라'가 됐다. 최근 연간 방문자 수가 1억9000만명, 회원 수는 네이버 카페와 모바일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합쳐 2100만명 정도다. 지난 한 해 동안 성사된 중고 거래 건수는 6000만 건에 이른다. 대한민국 사람 10명 중 4명은 '중고나라'를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19일 서울 삼성동 사옥에서 만난 이승우씨는 "처음 카페를 열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사람이 몰려들 줄 몰랐다"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중고나라' 사이트를 열어 보였다. "이젠 1초에 58명씩 찾아오고, 1초에 세 건씩 새 중고 거래가 등록되는 곳이 됐어요. 지금 제가 말하는 동안에만 벌써 중고 거래 9건이 등록됐어요. 그 사이 174명이 왔다 갔고요…." 말을 맺는 사이, 방문자 끝자리 숫자가 또 바뀌었다.
1초에 58명 왔다 가는 장터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전지현이 아끼던 가방을 '중고나라'에 몽땅 내놓는 장면이 나왔죠. 김수현이 "운포는 뭐고 에눌은 뭐냐?"고 했고요.
"그게 참…. '중고나라' 회원들끼리만 쓰던 인터넷 용어가 어느덧 보통명사가 돼버렸어요. '운포(운송비 포함)' '택포(택배비 포함)' '에눌(물건값 깎아줌)' '미개봉(뜯지도 않은 중고품)' '쿨거래(기분 좋은 거래)' '드림(돈 안 받고 그냥 줌)' 같은 말을 너도나도 다 쓰는 세상이 된 거죠. 그게 나중엔 드라마 대사로도 쓰이고(웃음). 카페를 만든 건 저와 초창기 멤버들이지만 지금의 '중고나라'는 제가 만든 게 아닌 거죠."
―초창기 '중고나라'에서 많이 팔리던 건 뭐였죠.
"카메라, 렌즈, 한정판 CD…. 뭐 그런 것들이었어요. 아무래도 초기엔 수집벽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어요. 아내 몰래 쌈짓돈으로 값비싼 물건을 수집하는 남자들이요. 그러다가 2008년 미국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불황이 왔고, 너도나도 중고를 사고팔기 시작했죠. 회원이 200만~300만명에서 갑자기 500만명을 넘어섰고, 금세 1000만명, 2000만명이 됐죠."
흔히 '중고나라'를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인터넷 커뮤니티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중고나라'는 제법 덩치가 큰 회사다. 이승우 대표는 인터넷 카페였던 '중고나라'를 2014년 '큐딜리온'이라는 법인으로 만들었다. 2015년에는 엔젤 투자자 및 벤처캐피털에서 80억원가량을 투자받았다. 최근엔 폐쇄형 공구 쇼핑몰 '비밀의 공구', 중고품을 와서 실어가는 '주마'서비스도 시작했다.
―'중고나라'가 이젠 마누라 몰래 중고 카메라와 렌즈를 사들이던 곳을 넘어섰다는 얘기인 거죠. 언제 이렇게까지 컸나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돌아보면 우연이 쌓여 어느덧 운명이 된 것도 같아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걸로 돈을 벌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안전결제'라는 걸 만들었어요. 중고품을 사고팔 때 이 프로그램이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테스트를 하다 규모가 커져 이게 사업이 된 거죠."
―풀어놓고 키운 병아리가 알 많이 낳는 닭이 됐다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비슷해요. 다만 그냥 놔둔 것만은 아니고 애정을 많이 쏟았어요. 별별 사업을 했다 망했다 반복하는 와중에도 이 카페 관리는 열심히 했어요. 게시판에 불평불만이 올라오면 바로바로 처리해주려고 애썼고요, 사람들 관심이 뜨거운 분야가 특별히 눈에 띄면 그것도 바로바로 정리해줬어요. 출산용품, 교복, 유아책, 장난감, 중고폰… 이런 식으로요."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료로 운영했죠.
"시장 갈 때 입장료 안 받잖아요. 그것과 똑같죠. 그냥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서 제가 벌여놓은 판에 모여 떠들고 만나고…, 그런 걸 보는 게 재밌었어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고 있다는 희열, 처음엔 그게 다였죠."
실패와 오지랖이 쌓이고 쌓여
이씨 어머니는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에서 옷을 팔았다. 이씨는 "6~7세 무렵부터 일하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그 곁에서 혼자 놀았다"고 했다. 지하상가 어느 집이 장사가 잘되는지, 어느 곳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지 어린 눈에도 훤히 보였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장사하는 풍경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했다.
1999년 광운대 법대에 갔고 남들처럼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영 재미가 없었다. 대학 강의도 상법(商法) 위주로 골라 들었다. 2002년 어느 날, 도서관에서 신문을 뒤적이다가 '중국 시장 뜬다'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책을 덮고 나와 상하이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상하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한 백화점에서 영국 축구 유니폼 '엄브로(Umbro)'를 파는 걸 봤다. 한국에선 10만원가량에 팔리는 유니폼이 2만~3만원가량이었다.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300만원을 빌린 뒤 다시 상하이로 날아가 '엄브로' 유니폼 300만원어치를 샀다. 첫 장사였다.
―중국 도매상을 찾아가 정식으로 물건을 샀다는 건가요.
"아뇨. 그냥 백화점에 가서 옷 300만원어치를 덜컥 산 거예요. 그걸 들고 서울에 왔는데 이걸 어찌 파나 싶더라고요. '도카닷컴'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하나 만들어 옷을 팔기 시작했는데, 축구 애호가들에게 금세 다 팔렸어요. 26세 나이에 돈 버는 맛을 알게 됐으니 너무 신났죠."
―창업 1년 만에 축구 관련 쇼핑몰 매출 1위를 기록했죠.
"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면 답은 무조건 10분 안에 달아줬어요. 물건 떼러 가는 길에도 질문 올라왔다는 전화를 받으면, 차 세우고 답을 단 다음에야 다시 떠나는 식이었죠."
월 매출은 1억5000만원까지 나왔지만 4년쯤 지나자 '가랑비에 옷 젖듯' 매출이 야금야금 떨어졌다. 포털사이트에서 키워드 광고를 시작하면서 축구 관련 1위 사이트였던 '도카닷컴'이 슬슬 밀려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쿠거'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스포츠 유니폼도 만들어 팔았다. 옷은 잘 팔렸지만 재고 관리가 쉽지 않았다. 업체에 꼬박꼬박 현금을 줘야 사업이 돌아가는데 늘 돈이 모자랐다. 이번엔 식당에 손을 댔다. 부침 요리와 막걸리를 파는 가게였다. 역시 쉽지 않았다. 걸핏하면 아르바이트생이 잠적했고, 주방일 하는 사람도 자주 그만뒀다. 결국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2007년에는 한 외국 회사로부터 소송도 당했다. 이씨가 만들어 파는 옷이 해외 브랜드 업체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네요.
"소송 비용만 1억원 넘게 들여가면서 2년 넘게 싸우다가 막판에 합의했어요. 그렇게 회사문 닫고 나니 수중에 딱 3000만원 남더라고요. 근데 무슨 오기인지, 그 돈으로 또 마지막 옷을 찍어냈어요. 월세 20만원짜리 지하 단칸방 얻어 티셔츠 500박스 들여놓고 마지막 옷 장사를 했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는데, 세상 일이 이상하죠. 일주일 만에 다 팔고 나왔어요. 그때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까짓 것 또 벌면 되는 거구나….'"
중고나라’ 로고가 박힌 자동차를 타고 환하게 웃는 이승우 대표. “중고나라는 이제 베트남을 비롯한 해외에도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오종찬 기자
네가 잘돼야 나도 잘된다
사업을 다 정리하고 나니 '중고나라'가 보였다. 회원 수는 이미 3000만명을 육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신발 가게를 하다가 쫄딱 망하고 마지막 남은 재고 정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한 명 만났다. 시험 삼아 그에게 남아 있다는 신발 4800켤레를 '공동구매'라는 이름으로 '중고나라'에서 팔아봤다. 일주일도 안 가서 몽땅 팔렸다.
―내게 이런 자산이 있었나 싶었겠군요.
"그럼요. 내가 만든 장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니…. 그게 그제야 눈에 들어온 거죠. '위코마켓'이라는 사이트를 구축해서 공동구매를 시작했죠."
'위코마켓' 연매출은 금세 10억원까지 올랐다. 주위에서 다들 "이제 진짜 돈벌이를 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그러나 수익 일부를 아동복지센터에 기부했고, '위코마켓' 사이트는 아예 굿네이버스에 기부했다.
―망했다가 겨우 일어났을 때 아닙니까.
"맞아요. 다 기부하고 굿네이버스 직원으로 2년인가 일했어요. 한 달 200만원 받았나 그래요. 처음엔 물론 아깝기도 했죠. 근데 망했을 때 이미 한번 제대로 배웠잖아요. 돈이라는 건 또 벌면 된다는 걸요."
―그 무렵 결혼도 하지 않았나요.
"네. 어쩌면 그래서 더 기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첫아이가 태어난 직후였을 거예요.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는데, 어떤 40대 가장이 통닭을 사 들고 집에 가다가 길에서 퍽치기 강도에게 당해 숨졌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갑자기 변을 당한 가족들이 어떻게 살까 생각해보니 무작정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누군가를 꾸준히 도우면 내게 무슨 변고가 일어나도 날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이었죠."
2016년 이씨는 뇌병변·지체장애인 4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중고나라'에 올라오는 사기·불법 거래를 감시하고 신고하는 일을 담당한다. 작년에는 이들 장애인 직원 전원에게 '우수사원' 시상을 했다. 장애인 직원은 올해 7명으로 늘어났다.
―이분들이 하루 270건이 넘는 사기 거래를 잡아낸다면서요.
"맞아요. 이분들이 이렇게까지 일을 잘할 줄이야…. 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직원 추천을 받았는데 거기서 그래요. '이분들을 위한 일을 따로 만들지 마세요. 남들 시키는 일 그대로 시키고 못하면 못한다고 혼내세요. 제대로 못 하면 해고하시고요. 그래야 이분들이 벽을 넘습니다.' 그 말대로 했죠. 그런데 다들 일을 정말 잘하더라고요. 이분들 덕분에 사기 거래가 줄어들었어요."
전국 고물상을 '중고나라'로
올 1월 이씨는 '비밀의 공구'를 론칭했다. 싸고 품질 좋기로 소문난 물건을 짧은 시간에 팔아치우는 공동구매 쇼핑몰이다. 이곳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검색해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먼저 입장한 회원에게 초대를 받고 가입 절차를 밟아야만 물건을 살 수가 있다.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는 싼 물건을 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비밀의 공구' 회원은 순식간에 10만명으로 불어났다.
―요즘은 전국 고물상 분들과 만난다던데요.
"우리나라 곳곳에 크고 작은 고물상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몇백 곳은 돼요. 그런데 다들 갈수록 '장사하기 어렵다'고들 하세요. '중고나라'에서 이분들이 일하면 잘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헌옷이나 헌책, 폐가전을 치워주고 대신 팔아주는 사업을 해보시라고 권했죠. 서비스 시작하자마자 터졌어요. 요즘 이 고물상 기사분들 돈 잘 버세요(웃음). '중고나라 덕분에 살 만해졌다'고 하시는 말 들으면 기분 좋죠."
―'중고나라'도 그렇고, '비밀의 공구'도 그렇고…, 결국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장사하고 돈 벌도록 판을 짜준 셈 아닙니까.
"맞아요. 장사라는 게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녜요. 다들 '혼밥' 하고 '혼술' 하는 시대지만, 장사는 그렇게만 해선 이뤄지지가 않아요. 반드시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서 부딪혀야만 이뤄져요. 전 어쩌면 사람들을 골방에서 나와서 만나도록 하는 데 재능이 있는 건지도 모르죠."
―만남이라는 게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죠.
"그럼요." 이씨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때론 괴로운 일이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들 만나고 부딪혀야만 세상이 돌아가는 걸요. 바퀴가 부딪치면서 삐걱거려도 그래야 움직이는 것처럼요. 어찌 됐건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하니까요."
―어머니는 '중고나라'가 어떤 곳인지 이해하시나요.
"아뇨." 그가 싱긋 웃었다. "아직도 거기가 뭐 하는 곳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하세요. 그냥 아들이 고물상 해서 돈 잘 버나 보다 하시죠(웃음)." 그 고물상이 꽤 사람 냄새 나는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